第68回グラミー賞において、アニメーション映画『KPOPガールズ! デーモン・ハンターズ』のOST「Golden」が、K-POPジャンルとしては史上初めてグラミー賞を受賞した。
また、グループBTSはメンバーの兵役終了後、初となる公演スケジュールを発表し、4月に韓国を皮切りに数か月にわたるワールドツアーを行う予定だと明らかにした。公演が予定されている都市では、すでにホテル料金が高騰している。
ブルダック炒め麺の世界的成功により、サムヤン食品は世界の食品企業時価総額トップ100に入るグローバル企業へと成長した。これに加え、韓国企業が生み出す製品や技術力も、国際的に高い評価を受けている。
今日、韓流は世界的な関心を集めているが、この変化は決して古いものではない。では、かつて「コレア」と呼ばれた未知の国の地を初めて踏んだ異邦人たちの目に、韓国はどのように映っていたのだろうか。
제6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Golden)’이 케이팝 장르 최초로 그래미 상을 수상했다.
그룹 BTS는 멤버들의 전역 이후 첫 공연 일정을 공개하며, 4월 한국을 시작으로 수개월간 월드 투어 콘서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연이 예정된 도시들의 호텔 가격은 이미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불닭볶음면의 세계적인 성공은 삼양식품을 세계 식품 기업 시가총액 100위권 안에 드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게 만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과 기술력 역시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늘날 한류는 전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러한 변화는 결코 오래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지의 나라 ‘코레아’의 땅을 처음 밟았던 이방인들의 눈에 비친 한국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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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나라 코레아는 이웃 국가인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서방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초기 서양인은 하멜일 것이다. 동인도 회사 소속 네덜란드 상선의 선원이었던 헨드릭 하멜은 17세기 중반 동료들과 함께 조선 땅에 표류해 머물며 겪은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멜 표류기』는 당시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을 비교적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하멜은 조선에서의 경험을 매우 담담한 어조로 기록했다. 오랜 세월 억류되어 많은 고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교도였던 자신과 일행에게 조선인들이 친절을 베풀었으며 정이 많았다고 적고 있다.
조선 후기에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사제들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 그중 마리 앙트완 다블뤼 주교는 19세기 중반 조선에 입국한 이후 가장 오랫동안 선교 활동을 하며 방대한 양의 수기를 남겼다.
다블뤼 주교는 조선 음식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보다도 침대가 아닌 흙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는 생활을 특히 힘들어했다. 오늘날에도 한국에서는 방바닥을 직접 데우는 온돌식 난방이 보편적인데, 그는 바닥이 지나치게 뜨거워 잠을 이루기 어렵다는 하소연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서양인 사제를 극진히 대접하려 했던 조선인들의 따뜻한 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고, 그들을 위해 놀라운 정신력으로 사제의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방바닥이 유난히 뜨거웠던 이유는, 다블뤼 주교가 따뜻하게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조선인들이 밤을 새워가며 장작을 때 바닥을 데웠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1900년대 초 러일전쟁이 발발하던 시기,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영국 상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일본을 거쳐 조선을 방문했다. 조선으로 향하는 배 위에서 그는 미지의 나라를 방문한다는 기대와 호기심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아손이 처음 마주한 조선인들의 모습은 키가 크고 신체 균형이 잘 잡혀 있으며, 흰 옷을 입고 품위 있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는 조선인을 낙천적이고 친절한 민족이라고 묘사했다. 한편, 그가 만난 또 다른 서양인은 조선인들이 뛰어난 두뇌를 지녔으나 미신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해주었다고 한다.
아손은 조선인들이 엄청난 양의 식사를 하는 민족이라고 기록하며, 손님에게도 푸짐한 음식을 대접해야 한다고 여긴다고 썼다. 또한 식사 자리에서 자신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흰옷 차림의 사람들 때문에 당황하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아손 기자 역시 다블뤼 주교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방바닥에 누워 자는 일을 큰 고역으로 여겼다. 더욱이 장작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많은 조선인들이 동물의 배설물 등을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는 고약한 냄새로 인해 몹시 힘들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의 눈에 비친 서울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불결하고 정비되지 않은 지방 도시들과 달리, 서울의 대로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장엄한 성문과 아름다운 궁궐, 우아하게 차려 입은 시민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적고 있다.
아손은 조선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 조선의 부정적인 모습도 분명 존재했음을 인정하면서도,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간직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아손 기자는 조선의 다양한 생활상을 폭넓게 기록했지만, 그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에 다시 소개하고자 한다.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코레아는 선진 문물이 발달하지 않았고 교육 수준 또한 낮은 나라였을지 모르지만,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으로 보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궁금하다면, 한국을 직접 방문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東北アジアの端に位置する小さな国コレアは、隣国である中国や日本と比べても、西洋世界にはほとんど知られていなかった。今日の韓国人に最もよく知られている初期の西洋人といえば、ハメルであろう。オランダ東インド会社に所属する船員であったヘンドリック・ハメルは、17世紀半ばに仲間たちとともに朝鮮の地に漂着し、その体験を記録として残した。『ハメル漂流記』は、当時の西洋人の目に映った朝鮮の姿を比較的生き生きと伝えている。
ハメルは朝鮮での体験を非常に淡々とした口調で記している。長年にわたる抑留生活で多くの苦難を経験しながらも、異教徒である自分たちに朝鮮人が親切に接し、情に厚い人々であったと書き残している。
朝鮮後期には、パリ外国宣教会に所属するフランス人司祭たちが派遣された。その中でも、マリ・アントワーヌ・ダブリュ司教は19世紀半ばに朝鮮へ入国し、最も長期間にわたり宣教活動を行い、膨大な量の手記を残した。
ダブリュ司教は、朝鮮料理の独特な匂いよりも、ベッドではなく土の床に布団を敷いて寝る生活を特に辛いと感じていた。現在でも韓国では床を直接温めるオンドル式暖房が一般的だが、彼は床があまりにも熱く、眠りにつくのが難しいと嘆いている。
しかし、貧しい生活の中でも西洋人司祭を手厚くもてなそうとする朝鮮人の温かい情に深く感動し、彼らのために驚くべき精神力で司祭としての務めを果たした。床が異常に熱くなった理由は、ダブリュ司教を暖かく眠らせるために、朝鮮人たちが夜通し薪をくべ続けていたからだと伝えられている。
20世紀初頭、日露戦争が勃発した時期に、スウェーデン人記者アーソン・グレブストはイギリス商人を装い、日本を経由して朝鮮を訪れた。朝鮮へ向かう船上で、彼は未知の国を訪れる期待と好奇心に胸を躍らせていた。
彼が最初に目にした朝鮮人の姿は、背が高く体格のバランスが良く、白い服を身にまとい、品位ある態度を備えた人々であった。彼は朝鮮人を楽天的で親切な民族だと描写している。一方で、彼が出会った別の西洋人は、朝鮮人は優れた知性を持ちながらも迷信を信じる傾向があると語ったという。
グレブストは、朝鮮人が非常に多くの食事をとる民族であり、客にも大量の料理を振る舞うべきだと考えていると記している。また、食事の席で白衣を着た人々が好奇心に満ちた視線で自分を見つめることに戸惑ったとも回想している。
彼もまたダブリュ司教と同様に、熱い床の上で眠ることを大きな苦痛と感じていた。さらに、薪が不足していたため、多くの朝鮮人が動物の排泄物を燃料として使用しており、その強烈な臭いに非常に苦しめられたと記録している。
彼の目に映ったソウルの姿は、まさに壮観であった。不潔で整備の行き届いていない地方都市とは異なり、ソウルの大通りはよく整えられ、壮麗な城門や美しい宮殿、優雅な身なりの市民たちの姿が印象的だったと記している。
グレブストは朝鮮にさらに滞在したいと望んだが、最終的には去らざるを得なかった。彼は出国の瞬間まで、朝鮮の否定的な側面の存在を認めつつも、朝鮮とその人々に対する深い愛情を抱き続けていたことを告白している。
彼は朝鮮の多様な生活様式について幅広く記録しているが、それらの話はまた別の機会に紹介したい。
西洋人の目に映ったコレアは、近代文明が発達せず教育水準も低い国に見えたかもしれない。しかし、情に厚い人々が暮らす土地として映っていたことは確かである。もちろん、これは筆者の個人的な見解に過ぎない。興味があるなら、ぜひ韓国を訪れてみてほし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