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年の新年、韓国の映画館を熱く盛り上げている作品がある。映画『王と暮らす男』である。本作は、朝鮮王朝第6代国王・端宗の人生を描いた作品だ。
端宗の物語は、これまで韓国の大衆文化において何度も扱われてきた、非常に馴染み深い題材である。それにもかかわらず、多くの観客が映画館を訪れ、端宗の人生に改めて関心を持ち、彼にゆかりのある場所を訪れている。
今回は映画『王と暮らす男』を通して、端宗の物語とその意味を見ていこう。
2026년 새해 한국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왕과 사는 남자〉이다. 이 영화는 조선 제6대 국왕 단종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사실 한국의 대중매체에서 단종 이야기는 매우 익숙하고도 상투적인 소재로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왕과 사는 남자〉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고, 단종의 삶에 다시 관심을 가지며 그와 관련된 장소를 방문하고 있다.
오늘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와 함께 단종의 이야기와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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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서비스의 확산으로 극장 산업은 오랜 기간 침체를 겪어 왔다. 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계에는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가 연일 흥행을 이어가며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비운의 왕 단종, 즉 이홍위가 생의 마지막 시기를 보냈던 강원도 영월을 배경으로, 그가 마을 사람들과 나누었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종은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손자이다. 세종대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문종은 뛰어난 자질을 지닌 왕이었지만, 재위한 지 약 2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문종의 외아들이었던 홍위는 불과 열두 살의 나이에 갑작스럽게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단종의 곁에는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있었지만, 어린 왕을 보호해 줄 왕실의 어른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조부모와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 역시 단종을 낳은 직후 사망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삼촌 수양대군은 왕위를 노렸고, 결국 정변을 일으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이었던 수양대군, 훗날의 세조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신하들뿐 아니라 형제들까지 숙청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그리고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켰다. 단종은 왕비 정순왕후와도 강제로 이별해야 했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으로 평가되는 단종의 이야기는 그동안 수많은 사극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져 왔다. 그렇다면 이미 잘 알려진 이 이야기가 왜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일까?
기존의 단종 관련 영화와 드라마는 대부분 왕실 내부의 권력 찬탈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수양대군과 그의 주변 인물들, 그리고 그에 맞섰던 신하들의 갈등이었다. 정작 가장 큰 희생자였던 단종 자신은 중심 인물로 조명되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다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단종 이홍위이며, 왕위에서 쫓겨난 이후 영월에서 보낸 시간과 그 속에서의 인간적인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월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닌 곳이지만 당시에는 매우 외진 지역이었다. 어린 이홍위는 아내 정순왕후와 생이별한 채 홀로 청령포에 머물게 되었고, 그곳에서 마을 촌장 엄홍도를 만나게 된다.
즉위 이후 줄곧 외롭고 불안한 삶을 살아왔던 이홍위는 엄홍도와 마을 사람들에게서 처음으로 인간적인 위로와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단종을 다시 왕위에 복위시키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비극은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단종은 죽임을 당하고 만다. 엄홍도는 목숨을 걸고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정성껏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기록에 따르면 단종은 세조가 내린 사약을 끝내 거부했고, 결국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엄홍도는 아들과 함께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장례를 치른 뒤, 가족을 이끌고 마을을 떠나 숨어 지냈다고 한다.
훗날 숙종 대에 이르러 단종이 왕으로 복위되면서, 엄홍도의 충절 또한 인정받아 관직이 내려졌다.
영화의 흥행 이후 단종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영월 청령포와 그의 능인 장릉을 찾는 방문객들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어린 왕의 슬픈 넋이 깃든 청령포는 뛰어난 자연경관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는 천연기념물 소나무인 관음송도 볼 수 있다. 관음송은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 나무 껍질이 검게 변한다고 한다.
또한 장릉에는 능 주변에 심어진 소나무들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나무가 무덤을 향해 굽어 자라고 있다. 마치 어린 왕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강원도 영월을 찾아 단종의 흔적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NetflixをはじめとするOTTサービスの普及により、映画館産業は長らく低迷してきた。しかし最近、韓国映画界に久しぶりの追い風が吹いている。チャン・ハンジュン監督の『王と暮らす男』が連日ヒットを記録し、観客を劇場へ呼び戻しているのである。
本作は、悲運の王・端宗、すなわち李弘暐が人生最後の時期を過ごした江原道・寧越(カンウォンド・ヨンウォル)を舞台に、彼と村人たちとの交流に焦点を当てている。
端宗は、ハングルを創製した世宗大王(セジョンデワン)の孫である。世宗の後を継いだ文宗(ムンジョン)は優れた王だったが、即位からわずか約2年で病により亡くなった。唯一の息子であった弘暐は、わずか12歳で突然王位に就くことになる。
忠実な臣下たちはいたものの、幼い王を守る王室の年長者はほとんど残っていなかった。祖父母や父はすでに亡くなり、母も出産直後に世を去っていた。その隙を突くように、叔父の首陽大君(スヤンデグン)が王位を狙い、政変を起こして王となった。
世宗大王の次男であった首陽大君、後の世祖(セジョ)は、 自分に反対する臣下だけでなく兄弟までも粛清し権力を掌握した。そして幼い甥・端宗を廃位し、王妃・定順王后(チョンスンワンフ)とも強制的に引き離し、寧越の清泠浦(チョンニョンポ)へ流罪とした。
朝鮮史上もっとも悲劇的な人生を送った王とも評される端宗の物語は、数多くの時代劇で描かれてきた。では、なぜ今再び人々の関心を集めているのだろうか。
これまでの作品は、王位簒奪をめぐる政治的対立、すなわち首陽大君とその周囲の人物、そして反対勢力の葛藤に焦点が当てられていた。最大の被害者であった端宗自身が物語の中心になることは少なかったのである。
しかし『王と暮らす男』は違う。本作では端宗・李弘暐その人が主人公であり、廃位後に寧越で過ごした時間と人間的な交流が描かれている。
美しい自然に恵まれた寧越は、当時非常に辺境の地であった。王妃と生き別れた幼い王は、清泠浦で孤独に暮らし、そこで村長の厳弘道(オム・フンド)と出会う。
即位以来、孤独と不安の中で生きてきた弘暐は、厳弘道と村人たちの中で初めて人の温もりと慰めを得る。
しかし、端宗復位の計画が失敗に終わり、悲劇は避けられなくなる。端宗はついに殺害されてしまう。厳弘道は命を懸けて王の遺体を収め、密かに墓を作った。
記録によれば、端宗は世祖が命じた毒薬を拒み、最終的に殺害されたと伝えられている。厳弘道は息子とともに遺体を密かに埋葬し、その後家族を連れて姿を消したという。
後に粛宗(スクチョン)の時代、端宗は王として復位され、厳弘道の忠義も認められ官職が与えられた。
映画の成功以降、端宗が最期を過ごした清泠浦や陵墓である荘陵(ヨンウォル・チャンヌン)を訪れる人々が増えている。
幼い王の悲しい魂が宿る清泠浦は、美しい自然景観でも知られる場所である。ここでは天然記念物の松「観音松」を見ることができ、国に危機が訪れると樹皮が黒く変わるという言い伝えがある。
また荘陵では、墓の周囲の松が不思議なことに陵へ向かって曲がって育っており、まるで若き王に頭を垂れているかのように見える。
機会があれば、江原道・寧越を訪れ、端宗の足跡を辿ってみるのも意義深い旅となるだろう。